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by journal7172 2025. 6. 5.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외침이 아직도 간절한 나라. 한국의 택배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이후 폭증한 물류 수요 속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인력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이들의 건강과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이 글에서는 과로사 문제, 물류 자동화 도입의 현주소와 방향성, 노동조합 활동을 통한 개선 사례까지 택배 노동 환경의 본질을 세심하게 조망하고자 합니다.

 

택배 노동자의 현실과 노동 환경 개선 방안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구조적 방치에서 비롯된 비극


‘오늘도 누군가는 쓰러졌다’는 비극이 반복된다


2020년, 50대의 한 택배 기사가 아파트 단지 앞에서 쓰러져 끝내 숨졌습니다. 유족의 말에 따르면 그는 그날 새벽 5시부터 분류작업을 시작했고, 밤 10시까지 배송을 이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루 14~16시간의 노동은 예외가 아닌 일상입니다. 특히 명절이나 이벤트 시즌에는 물량이 2배 이상 늘어나면서, 일주일 내내 휴일 없이 근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숨겨진 시간: 무급 분류작업


대다수 국민이 알고 있는 ‘배송’은 물건을 들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새벽에 물류센터에서 택배를 분류하고, 지역별로 나누는 일이 전체 노동 시간의 30~40%를 차지합니다. 문제는 이 작업이 공식 ‘업무 시간’으로 인정되지 않고, 무급으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착취의 시간’은 이들의 과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건강검진도 사치, 기본권에서 소외된 노동


택배 노동자는 대부분 개인사업자로 계약됩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정기 건강검진조차 의무사항이 아닙니다. 많은 기사들이 “병원은 배달 마친 밤 11시에야 갈 수 있다”며, 질병이 악화될 때까지 참는 게 기본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2021년 고용노동부와 과로사대책위 조사에 따르면, 택배기사 10명 중 7명이 심혈관계 질환 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배송 요일제’와 ‘분류작업 배제’는 시작일 뿐


정부와 택배사들은 2021년 이후 ‘분류작업은 택배기사가 하지 않도록 한다’, ‘주 1일은 휴무를 보장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인력 충원 부족과 강제 휴무 불이행 문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위탁 계약 구조에서는 본사 지침이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물류 자동화 도입,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


AI 로봇과 컨베이어가 들어온 물류센터


2022년부터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등 주요 택배사들은 대규모 자동화 설비 투자를 발표했습니다. 무인 이송 로봇, 자동 분류 시스템, 실시간 배송 경로 최적화 AI까지, 기술적으로는 이미 놀라운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물류창고에서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물건을 옮기던 시절과 달리, 현재는 알고리즘과 로봇이 대부분의 작업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는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모순적이게도 자동화 이후 배송 기사들의 업무는 오히려 더 과중해졌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기술이 물류 처리 속도를 높이면, 그만큼 더 많은 물량이 기사에게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자동 분류기 한 대가 하루 20만 개를 처리하면, 기존 300개 배송하던 기사에게 400~500개의 물량이 배정되는 겁니다. 시스템은 빨라졌지만, 인간은 여전히 하루 24시간 안에 움직여야만 한다는 점을 기술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자동화가 진짜 도움이 되려면


진정한 자동화는 인간의 노동 강도를 줄이고, 여유 시간을 확보해 주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예컨대 배송 동선을 AI가 최적화해 이동 거리를 줄이고 연료 소비를 낮추는 시스템, 혹은 일정 무게 이상 물품에 대해 로봇 이송을 의무화하는 방식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더 많은 박스를, 더 짧은 시간에 배송하라’는 방향은 기술이 인간을 압박하는 형태일 뿐입니다.

 

기술과 윤리는 함께 가야 한다


택배 산업의 자동화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물류 효율성 확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해야만 ‘윤리적 기술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 도입 전후로 철저한 현장 피드백 수렴과, 관련 노동자들의 의견 반영이 필수적입니다.

 

 

노동조합의 성장, 변화의 시작점


택배 기사도 권리를 외칠 수 있는 시대


한때 ‘개인사업자’라는 명목 아래 노동자로서의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택배 기사들. 그러나 2017년 전국택배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이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권리를 조직화해 말할 수 있는 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산재보장 적용 확대’, ‘배송 요일제 도입’, ‘휴게시간 보장’ 등은 노조의 꾸준한 요구 끝에 제도화되기 시작한 대표 사례입니다.

 

실질적인 성과: 사회적 합의와 지자체 협약


2021년에는 고용노동부와 4대 택배사, 노조 대표가 모여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법제화 없이도 실질적인 약속을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서울시,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는 택배기사용 휴게실 설치, 폭염 시 물 제공, 중량물 배송 보조 인력 지원 등 생활 밀착형 복지정책을 연계하고 있습니다.

 

갈 길은 멀다, 그러나 길은 있다


택배업계의 구조는 복잡합니다. 본사-대리점-기사의 삼단계 구조, 수수료 중심의 계약 방식, 개인사업자 등록 등은 여전히 노동 3권을 보장받기 어렵게 만드는 장벽입니다. 게다가 노조 가입률도 낮고, 노조에 속하지 않은 기사들은 여전히 부당한 계약과 압박에 노출돼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화된 목소리가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의 의미는 매우 큽니다.

 

변화는 연대에서 시작된다


택배 기사들의 연대는 단순한 권리 요구를 넘어, 사회적 약자들이 어떻게 자기 목소리를 만들고 현실을 바꾸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택배 기사뿐만 아니라 퀵서비스, 배달 라이더 등 다양한 플랫폼 노동자들과의 연대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는 ‘배달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노동 존중 사회로의 이행 과정으로 읽혀야 합니다.

 

 

 

택배 노동자는 오늘도 수천 개의 박스를 통해 우리의 일상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기본적인 권리와 건강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는 중입니다. 과로사라는 이름의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사회적 합의로 가져가야 합니다.

 

분류작업은 전면 자동화 또는 유급 전환

배송 물량 상한제 및 주당 노동 시간제한

기술 도입 시 노동자 의견 필수 반영

노조 활동 보호와 개인사업자 위장 계약 금지

 

택배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택배 노동자 없는 사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존중이야말로, 건강한 유통 구조의 시작이자, 노동 존중 사회로 가는 첫걸음입니다.